콩팥-조혈모세포 딸에게… 모정이 살린 생명[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5일 01시 40분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교수-만성 신부전 이서연 씨
멍들고 현기증에 생리 과다가 시초… 대형 병원서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
조혈모세포 이식해도 경과 안 좋아…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돼 투석치료
어머니가 주신 콩팥 이식수술 받아… 교사 복직-일상 복귀, 제2의 삶 얻어

이서연 씨(가명)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과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어머니에게서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콩팥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이 씨와 함께 진료 기록을 살피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이서연 씨(가명)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과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어머니에게서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콩팥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이 씨와 함께 진료 기록을 살피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2018년 이서연 씨(가명·33)는 그토록 원하던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파릇파릇 새싹 같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봄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다. 아이들 체험 학습으로 인근 언덕에 오르던 중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눈앞이 아득했다. 다행히 그 후 암전 현상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씨는 체력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그랬거니 하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전에 없던 증세들이 나타나는 게 맘에 걸렸다. 월경 기간에 출혈량이 늘었다. 부딪친 적도 없는데 자꾸 멍이 들었다. 피로감도 훨씬 심해졌다. 이 씨는 동네 내과를 찾았다. 혈액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가 백혈병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

이 씨는 A 대형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백혈병은 아니었다.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진단이 떨어졌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골수 안에서 혈액세포가 덜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병이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모두 감소할 수 있다. 젊은 연령대에서도 곧잘 발생한다. 서양에 비해 국내 발생률이 2∼3배 높다.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멍, 월경 과다 등 출혈이 흔하게 나타난다. 피로감, 빈혈 등도 자주 나타나는 증세다. 이 씨에게 나타난 모든 증세와 일치한다. 경증일 때는 일단 관찰만 한다. 중증일 때는 감염과 출혈에 따른 사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 조혈모세포 이식 등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 씨는 경증과 중증의 중간 단계였다. 의료진은 일단 관찰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걱정은 오히려 커졌다. 이 씨는 몸과 마음을 달래며 간신히 버텼다. 치료법을 찾던 차에 조혈모세포 이식이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 병원 의료진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동의했다.

조혈모세포는 유전자가 어느 정도 일치해야 이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로 가족에게서 기증받는 경우가 많다. 이 씨도 그랬다. 동생이 조혈모세포를 주기로 했다. 이 씨는 교사 생활 첫해를 마무리하고 휴직했다. 이어 2019년 4월 동생의 조혈모세포를 받았다. 이로써 투병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

이 씨는 한 달 후 퇴원했고, 이후 수시로 외래 검사를 받았다. 다시 한 달이 지난 6월, 의사가 거대세포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거대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피로감이나 염증이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증세가 미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있다면 거대세포 바이러스는 장기에 침투해 심각한 질병을 발생시킨다. 이 씨의 경우 혈액 수치가 떨어지는 등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로 예정됐던 입원 기간은 점점 늘어났다. 재생불량성 빈혈도 중증으로 악화했다. 면역력이 너무 안 좋아 다인 병실 대신 1인실이나 2인실만 써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의사는 동일한 치료를 이어가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불안했고 우울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씨는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9월에 스스로 퇴원을 결정했다.

이후 3일마다 병원을 찾아 수혈받았다. 그러던 중 혈액 검사에서 신장(콩팥) 이상이 발견됐다. 이 씨에게 이식된 동생 조혈모세포의 면역세포가 이 씨의 몸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한 것. 이를 이식편대숙주병이라 한다. 어쩔 수 없이 11월, 다시 입원해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 치료 부작용으로 몸무게가 15kg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12월 퇴원한 뒤 여러 약물을 복용했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 씨의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렀다. 치료란 치료는 다 해 봤지만 ‘크레아티닌 수치’는 더 올라갔다. 크레아티닌은 콩팥을 통해 배출되는 노폐물이다.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콩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악화한 것.

● 어머니 콩팥-조혈모세포 받아

그해 5월 이 씨는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매주 4회, 4시간씩 투석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이 씨는 더 지쳐갔다. 이제 희망은 콩팥 이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A 병원 의료진은 이 씨의 혈액 수치가 너무 낮아 장기 이식이 어렵다고 했다.

이 씨와 가족은 절망하지 않았다. 이 씨의 몸 상태로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모두 이식할 수 있는 병원을 물색했다. 서울성모병원의 성공 사례가 여럿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씨는 서울성모병원으로 갔다.

서울성모병원에서는 각 진료과 교수가 모여 치료 방법을 논의했다. 이 ‘다학제’ 진료를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식할 콩팥이 필요했다. 이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의료진은 환자와 유전자가 더 가까운 어머니의 콩팥을 이식하기로 했다.

12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박순철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맡았다. 수술은 약 4시간 만에 끝났다. 박 교수는 “콩팥 이식 수술은 3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환자의 몸 상태를 의식해 꼼꼼히 마무리하느라 1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장 이식 때는 복부를 20∼50cm를 L자 형태로 절개한다. 박 교수는 10cm만 절개하는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이 방법으로 국내에서 가장 먼저 100회 수술을 기록한 바 있다.

콩팥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2개월 후 조혈모세포를 다시 이식했다. 이번에도 어머니가 기증했다. 그러니까 콩팥과 조혈모세포를 모두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문 편”이라며 “동일한 인물에서 조혈모세포와 콩팥을 이식받았기에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할 우려도 매우 적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소량의 면역억제제를 복용했고, 그마저도 2022년 9월 중단했다.


●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

사실 치료 과정에서 힘든 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때 호흡곤란과 같은 심부전 증세가 나타났다. 유방에 양성 종양이 생겼다. 월경이 중단되기도 했다. 양쪽 골반 부위 조직 일부가 괴사해 한동안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체중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스테로이드를 먹을 때 60kg까지 올라갔던 체중은 콩팥 이식 후에는 36kg으로 뚝 떨어졌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 사실상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이뤄냈다. 가장 큰 원동력이 뭘까. 이 씨는 부모의 헌신을 꼽았다. 이 씨는 “어머니가 콩팥을 주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내가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부모님이 그런 일을 안 겪으셔도 됐을 텐데,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 은혜를 평생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박 교수에게도 감사의 말을 남겼다. 이 씨는 “늘 위로와 격려로 불안감을 줄여줬다”라고 말했다. 콩팥 이식 수술 전날에도 박 교수는 병동을 찾아 이 씨의 몸 상태를 살피러 왔고,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 씨는 “바로 그 순간 믿음이 확 갔다”라고 말했다.

2023년 3월, 이 씨는 다시 교단에 섰다. 4년 만의 복직이었다. 이 씨는 “다시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을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몸 상태는 어떨까. 극심했던 피로는 거의 사라졌다. 월경도 다시 규칙적으로 이뤄졌다. 더 이상 멍도 들지 않는다. 이 씨는 콩팥 이식 수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건강 점검을 받고 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 삶을 보내고 두 번째 삶이 시작됐다고 받아들였어요. 하루하루가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재생불량성 빈혈#조혈모세포 이식#만성 신부전#거대세포 바이러스#면역력#콩팥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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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25-03-15 07:19:59

    훌륭한 어머니,탁월한 의사 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입니다.건강하게 잘 살아가길 바랍니다.

  • 2025-03-16 09:07:37

    절망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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