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백년 전 만평, 사진으로는 담지 못한 진주 시위대의 목소리[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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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혜 작성일24-12-21 13:30 조회2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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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2월 9일자 동아만평에 “이야 어쨌든지”라는 만평이 실렸습니다. ‘도청’이라는 글자가 써진 집 왼쪽에 진주라는 한자와 사람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부산이라는 글자 위에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만 보아서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그 시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그러다 12월 16일자에 실린 기사와 사진을 보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진주에서 특파원 김동진이 보낸 기사를 보니 비로소 만평의 의미가 이해됩니다. 진주시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려고 하자 진주시에서 큰 시위가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1924년 12월 16일자 기사입니다. 和田知事急遽上京漸次擴大되는慶南道廳移轉反對날로 격렬해지는 도청 이전 반대 운동총독 초전에 의해 화전 지사 급히 상경◇晋州에서 特派員 金東進 發電13일 오후, 시위운동대는 부산 방면과의 교통을 차단하기 위해 남선교(南船橋)를 파괴하려는 계획으로 행렬을 지어 이동했다. 그러나 이를 경비하던 경찰에 의해 목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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